「신령님이 시켰다」는 말은 책임을 면해주는가
「신령님이 시켰다」는 말은 책임을 면해주는가
무속 현장에서 너무 쉽게 사용되는 말이 있다.
“신령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신령님이 시키셨습니다.”
“제가 하는 말이 아니라 신령님 말씀입니다.”
무속을 신앙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무속인이 신령의 뜻을 받들고 전달한다고 믿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실제로 많은 무속인이 자신을 신령과 인간 사이에서 뜻을 전하는 존재로 여기며 무업에 임한다.
그러나 여기서 반드시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가 있다.
그 말을 전달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결국 사람이다.
신령의 뜻을 느끼고 받아들이는 것도 사람이며,
그것을 해석하고 판단하여 상대방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표현하는 것 역시 사람이다.
그렇다면 그 과정에서 생기는 판단과 해석의 책임까지 모두 신령에게 돌릴 수 있을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무속인이 신령의 뜻이라고 믿고 전달하는 말에도 그 사람의 지식과 경험, 가치관과 판단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
같은 상황을 두고도 무속인마다 해석이 다르고, 공수의 내용과 표현 방식이 달라지는 이유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신령의 뜻이 다르기 때문인가, 아니면 그것을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제자의 그릇이 다르기 때문인가.
이 질문은 결코 가볍지 않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신령의 뜻으로 착각할 수도 있고,
부족한 지식에서 비롯된 판단을 신령의 말씀이라고 단정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 말을 듣는 사람은 무속인을 믿고 찾아온 사람이다.
절박한 사정으로 찾아온 사람에게 “신령님이 시키셨다”는 말은 단순한 조언이 아니라
거역하기 어려운 명령처럼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그렇기에 무속인은 자신이 하는 말의 무게를 알아야 한다.
신령의 이름을 앞세웠다고 해서 자신의 말에 대한 책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신령의 말씀이라고 전달할수록 더욱 신중해야 하며,
자신의 해석이 틀릴 수 있다는 가능성까지 돌아볼 줄 알아야 한다.
잘된 일은 자신의 신력이 뛰어나서이고, 잘못된 일은 신령이 그렇게 시켜서라고 한다면
과연 제자는 무엇에 책임을 지는가.
신령을 모신다는 것은 자신의 판단을 절대화할 수 있는 권한을 얻었다는 뜻이 아니다.
신령의 뜻을 전한다고 믿는 사람일수록 더 많이 배우고, 더 깊이 생각하며,
자신의 말과 행동에 더 큰 책임을 져야 한다는 뜻이다.
결국 신령의 이름을 귀하게 만드는 것도, 그 이름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는 것도 현실에서는 제자의 언행을 통해 나타난다. 그러므로 “신령님이 시켰다”는 말을 하기 전에 먼저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나는 신령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
혹시 내 생각과 욕심을 신령의 말씀으로 포장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리고 그 말로 인해 누군가 상처받거나 피해를 입는다면 나는 책임질 준비가 되어 있는가.
신령을 모시는 제자라면 신령의 이름 뒤에 숨어서는 안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