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무당을 핍박 받게 한 성리학
성리학(性理學)은 특정한 한 사람이 어느 날 만든 종교라기보다는, 중국 송나라 때 여러 유학자의 사상을 거쳐 형성되었다.
성리학은 언제 만들어졌나?
대략 11~12세기 중국 북송·남송 시대에 형성되었고 그 출발점에서 중요한 인물은 주돈이(周敦頤, 1017~1073)이다. 그는 「태극도설(太極圖說)」을 통해 태극·음양·오행과 인간의 도덕성을 하나의 우주론으로 설명했다.
이후 정호(程顥, 1032~1085)와 정이(程頤, 1033~1107) 형제가 성리학의 핵심 개념인 **이(理)와 기(氣), 성(性)**에 대한 철학을 발전시킨다.
그리고 이를 종합하여 거대한 사상체계로 완성한 사람이 바로 주희(朱熹, 1130~1200)이다.
그래서 성리학을 흔히 주자학(朱子學)이라고도 부르고 주희(朱熹)가 집대성한 유학의 철학 체계이다.
즉, 주돈이 → 정호·정이 → 주희 라는 흐름을 기본 골격으로 이해하면 좋다.
그런데 공자와 성리학은 구별해야 한다
이 부분은 매우 중요하다.
공자는 기원전 6~5세기의 인물이고 , 반면 주희는 12세기의 인물이다.
두 사람 사이에는 약 1,600년의 시간차가 있다.
따라서 공자 = 성리학의 창시자 라고 하면 역사적으로 틀리다.
공자와 맹자로 이어지는 고대 유학을 송나라 학자들이 불교·도교가 크게 발전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새롭게 철학적으로 재구성한 것이 송대 성리학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조선에는 언제 들어왔나?
고려 후기인 13세기 말~14세기에 성리학이 본격적으로 수용된다.
대표적으로 안향(安珦, 1243~1306)이 중요한 인물입니다. 안향은 원나라에서 주희의 저술을 접하고
이를 고려에 소개한 대표적인 초기 성리학자로 평가된다.
이후 백이정 → 이제현 → 이색 등의 학맥을 거치면서 성리학이 고려 지식인 사회에 확산되고
고려 말에는 정몽주, 정도전 등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특히 정도전은 성리학적 국가질서를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조선 건국과 성리학
1392년 조선이 건국되면서 성리학은
단순한 학문을 넘어 새 왕조의 정치·사회적 기본 이념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여기서 중요한 인물이 정도전 이다.
정도전은 불교의 정치·경제적 영향력을 강하게 비판했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