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은 의사였을까?

무당은 의사였을까?

무당은 의사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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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는 무당을 굿을 하는 사람으로만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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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놀랍게도 조선 초기에는 무당이 사람의 병을 돌보는 역할도 맡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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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국가에서 무격(무당)을 관리하기 위해 성수청(星宿廳)이라는 관청을 두었다.

성수청은 고려 시대부터 이어져 온 제도로, 국가의 제사와 기도, 길흉을 살피는 일뿐 아니라 무격을 관리하는 역할도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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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무격은 단순히 제례를 주관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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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는 국가 의료기관인 활인원(活人院)에서 병든 백성을 돌보는 일에도 참여했다.

활인원은 오늘날로 치면 공공병원과 구호시설을 함께 갖춘 기관이었다.

전염병 환자를 치료하고, 가난한 백성을 보호하며, 재난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음식과 약을 나누어 주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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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무당이 이런 역할을 맡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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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유는 동아시아의 오래된 역사 속에서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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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고대 문헌인 『산해경(山海經)』에는 무(巫)가 제사를 주관할 뿐 아니라 약과 치료를 담당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실제로 한자 '의사 의(醫)'는 옛날에는 '毉'라는 글자를 사용했는데, 이 글자에는 무당 무(巫)가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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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고대 사회에서 치료와 제사, 주술이 서로 분리되지 않았음을 보여 주는 흔적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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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는 병의 원인을 자연현상과 신적인 힘이 함께 작용한 결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병을 치료하는 사람은 약을 쓰는 동시에 기도를 올리고 의식을 행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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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배경 속에서 무격은 병든 사람의 몸뿐 아니라 마음까지 위로하는 존재였고, 공동체 안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물론 오늘날의 의학은 과학적 연구와 임상시험을 바탕으로 발전한 현대의료 체계이며, 조선 시대 무격의 치병 활동과는 성격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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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역사를 돌아보면,

무당은 단순히 굿을 하는 사람만이 아니라 시대에 따라 제사, 상담, 치유, 구호 활동까지 맡았던 복합적인 역할의 인물이기도 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무당의 모습은 긴 역사 속 여러 역할 가운데 한 단면일 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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