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감히 무속을 하등종교라 하는가

누가 감히 무속을 하등종교라 하는가

누가 감히 무속을 하등종교라 하는가

무속을 미신이라 부르고, 무교를 하등한 신앙이라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나는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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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무엇을 기준으로 한 종교를 높다 하고, 무엇을 기준으로 낮다 하는가?

무속의 뿌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깊다.

인류가 문자로 역사를 기록하기 훨씬 이전부터 사람들은 하늘을 우러러보았고, 해와 달과 별을 경외했으며, 산과 강과 바다 앞에서 인간을 넘어서는 존재를 느꼈다.

천둥과 번개, 비와 바람을 바라보며 자연의 힘을 두려워했고, 생명의 탄생과 죽음을 경험하면서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한 인류의 오래된 신앙 형태 가운데 하나가 바로 샤머니즘적 신앙이다.

우리 민족 역시 오랜 세월 하늘과 땅, 산과 물, 조상과 자연을 섬기며 독특한 신앙문화를 발전시켜 왔다.

오늘날 우리가 무속 또는 무교라고 부르는 전통 역시 이러한 오랜 역사와 문화적 토대 위에서 형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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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교는 자연과 인간을 분리하지 않았다

무교의 세계관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자연에 대한 태도이다.

우리의 옛사람들은 산을 단순한 흙더미로 보지 않았다.

산에는 산신이 있고, 물에는 용신이 있으며, 마을에는 서낭이 있고, 집에는 성주와 조왕과 터주가 있다고 여겼다.

큰 나무와 오래된 바위, 샘과 우물에도 신성함이 깃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것을 오늘날의 시각으로 단순히 미신이라고만 치부할 수 있을까?

오히려 그 안에는 중요한 철학이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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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자연의 주인이 아니라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존재다.”

산을 함부로 훼손하지 않고, 오래된 나무를 존중하며, 물을 신성하게 여기고, 땅에 제를 올렸던 행위에는

자연에 대한 두려움과 감사가 함께 존재했다.

오늘날 환경위기와 기후위기의 시대에 다시 생각해 볼 만한 세계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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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교에는 인간의 삶 전체가 들어 있다

무교는 죽은 뒤의 세계만 이야기하지 않는다.

사람이 태어나고 성장하고 혼인하고 자식을 낳고 늙고 죽는 모든 과정에 신앙이 함께한다.

삼신에게 생명을 기원하고,

칠성에게 수명과 복을 빌고,

성주에게 집안의 평안을 기원하며,

조왕에게 가족의 안녕을 빌었다.

마을에서는 서낭과 산신에게 공동체의 평안을 기원했고,

바다에서는 용왕에게 풍어와 무사귀환을 빌었다.

그리고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망자의 넋을 위로하고 좋은 곳으로 보내기 위한 의례를 행했다.

즉 무교는 단순히 귀신을 부르는 종교가 아니다.

탄생에서 죽음까지, 개인에서 가족으로, 가족에서 마을로, 인간에서 자연과 우주로 이어지는 삶의 종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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